잡담

안아프면 좋았겠지만 내삶의 여러조건들로 나는 아프게 되었고 그럼에도 지금 이렇게 조금씩 나아지며 살아가고 있다. 아팠어서 아픈 사람들의 마음도 조금은 더 잘알수있다. 나는 사실 어떻든간에 지금의 내가 좋은것 같다. 타인의 아픔을 잘모르는 사람은 되고싶지 않기에

* 공지 * 잡담

여기저기 다른 필명으로 올렸던 짧은 소설들과 내인생의 이야기를 트친분들과도 함께 보고 싶어 이곳에 모아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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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조각이불 4] 밤에 ...라는 말을 들었다

  새벽에 당신이 나를 불렀다. 당신은 5년 전에 죽었다. 그러니까 나를 부른 것은 죽은 당신. 귀신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 무섭지도 않았어. 열에 시달리던 나는 바로 옆에서 말하는 듯 귓가에 나직하게 울리는 당신의 목소릴 들었지. 눈을 뜨지 않았지만 왠지 당신이라는 걸 알 수 있었어. 이런 다정한 목소리는 아주 어릴 때를 빼고는 들어보지 못했어. 그래서 여러번 끈질지게 반복되는 내 이름을 듣고 또 들었지. 

  왜 왔어? 마음속으로 물었어. 당신은 대답하지 않았어. 나를 데려가려고 온 거야? 라고 물었어. 역시 대답하지 않았지. 당신이 나를 데리러올 거라는 건 당신이 죽던 날부터 생긴 나의 미신적인 두려움. 마지막까지 당신을 미워한 날 원망할 거라고 생각했지. 그때 내 이마에 따뜻한 느낌이 훈풍처럼 내려앉았어. 눈은 역시 떠지지 않았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어. 그건 당신의 손. 따뜻하면서도 시원한 당신의 손이 이마에 내려앉자 이상하게 나는 조금 숨쉬기가 편해졌어. 괴롭던 열도 가라앉는 듯 했지. 나는 점점 숨이 편해지며 잠이 오는 걸 느꼈어.  
  
  어제 새벽에, 술을 먹다 죽은 당신이 사흘째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누워있던 나를 불렀어. 술에 취하지 않은 당신의 목소리를 들은 게 거의 10년만. 아빠, 거기는 술이 없나보지? 아침 햇빛이 창문 틈을 비집고 들어오자 나는 잠들기 전 들었던 당신의 말이 기억났어. 

 죽지 마라... 
 나처럼 죽지 마라.

[가족조각이불 3] 고추장과 김치를 넣고 싹싹 비벼먹다

 자려다가 배가 고파 오랜만에 김치와 고추장을 넣고 싹싹 비벼먹었다. 친구가 갖다 준 총각김치가 잘 익어 무척 맛있었다. 김치와 고추장을 넣고 밥을 비벼먹어 본 게 도대체 얼마만일까.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통 안 그랬던 것 같아. 의식하고 있지는 않았는데.
  
  아빠는 뭐든지 비벼먹는 것을 좋아했다. 별다른 걸 넣고 비비는 것도 아닌데 아빠가 비벼놓은 밥은 더 맛있었다. 아빠가 좀 괜찮았던 시절엔, 아빠가 비벼놓은 밥그릇에 숟가락을 같이 꽂아서 둘이서 맛있게 나눠먹곤 했다. 마치 만화 속 요츠바와 그 아빠처럼. 엄마는 그래서 아빠는 고추장 없으면 못 살 사람이라고도 말했다. 
  
  지금 나는 밥을 맛있게 비벼먹다가 잠깐 울컥 한다. 고추장의 매운 맛이 혀에 달착지근하면서도 싸하다. 기억이란 이렇게 작은 계기 하나로 확 덮쳐 오는 것이고, 그게 일상적이면 일상적일수록 여운은 더욱 강하다.
  
  죽고 나서야 혹은 내곁을 떠나서야, 그제야 그립게 추억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계속 옆에 있으면 아마 이렇게 조금은 애틋하게 생각하기가 불가능했을. 그것은 나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굉장히 강한 사람이었다면 어쩌면 가능했겠지만 아쉽게도 그렇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그의 엄마가 아니고 딸이었고, 아직은 딸이고 싶었다. 좀더 그가 나이가 들었고 내가 나이가 들었다면 어쩌면 가능했을지도 모르지만. 
  
  이미 죽어버린 사람들을 떠올리는 건 마음이 먹먹해지는 일이다. 어떻게 해도 변할 수 없는 단단한 '죽음'이라는 현실. 다신 이야기 할 수도 만날 수도 없다. 절대로 움직일 수 없는 진리, 죽음.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 
  
  나는 책꽂이를 급히 뒤져 너무 많이 봐 모서리가 나달나달해진 책을 한권 꺼낸다. <세게묘지문화기행>. 갑작스럽게 가까운 사람들이 연이어 자의로 혹은 타의로 영영 내곁을 떠났을 때 그 시간들을 견디기 위해 나는 이런저런 미친 짓, 이상한 짓을 했다. 살아남기 위해. 마음의 독을 내뱉기 위해 외부에 독을 만들었다. 밤새 길을 하염없이 걸었던 적도 있었고, 술에 쩔었던 적도 있었고, 며칠이고 먹지도 씻지도 않고 방밖으론 한발자국도 나가지 않은 적도 있었다. 머리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떨치기 위해 도서관에서 하루종일 쉬지 않고 책을 읽은 시절도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서가에서 이 책 <세계묘지문화기행>을 발견했다. 저자가 유럽, 아메리카 , 아시아, 세계의 다양한 묘지들을 직접 답사하고 수백장의 사진들과 함께 실어놓은 책이었다. 
  
  어쩌면 집요하게 느껴질 정도로 취재한 다양한 묘지들 중에서 나는 일본의 묘지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일본의 묘지는 다른 나라들처럼 묘지나 납골당처럼 먼 곳에 사람들 눈에 안 띄는 곳에, 유배하는 것처럼 만들지 않았다. 마을 한가운데, 야구장 옆에, '공원묘지'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리게 그렇게 삶 속에 함께 자리하고 있다. 삶과 죽음이 이렇게 함께 하고 있다. 기억된다.
  
  아, 그래. 어차피, 나도 죽는다. 좀 뒤일뿐.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를 살아라.
  
  그러니 거기서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죽고나면 알게 되겠지. 혹 만나게 되면 확실친 않지만 지금보다 나이가 들어서 죽을 테니 다 아는 처지에, 같이 나이먹은 처지에 점잖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지. 아마 그땐 이 지상에서의 일 같은 건 서로 말하지 않겠지. 눈빛으로 알게 될테니. 
  
  혹은 내가 지금 홀로 마음속에서 하는 이야기들을 이미 저 하늘에서 다 듣고 있을 것이고, 그도 내게 미안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사랑했다고 말하고 있을 테니. 
  
  나도 사랑했었다. 그리고 계속 사랑하고 싶었다. 그가 더이상 망가지지 않았으면 했다. 비록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지만. 지금은 편안할 테니 다행. 그리고 이제 다시 사랑하려 한다. 옆에 없는 그를. 옆에 없어서 오히려. 그래서 나는 가끔 견딜 수 있을 것 같으면, 계기가 생기면 이렇게 오래된 기억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먼지 속에도 아주 깊은 곳에는 잠깐잠깐 반짝이던 순간들이 분명히 몇개 있었다. 항상 시궁창이었던 건 아니다. 
  
  책을 내려놓고 나는 다시 밥을 한 숟갈 한 숟갈씩 뜬다. 맵싸한 밥알이 넘어가고, 질겅질겅 김치가 씹힌다. 쨍강쨍강 좁은 그릇에서 둘의 숟가락이 부딪치던 소리가 들린다. 웃음소리가 들린다. 나는 울다가 웃는다. 그리고 절대 입밖으로 내지 않았던 말을 숨쉬기를 배우듯 힘들게 토해본다. 
  
  "아, 보... 보... 보, 보고 싶다."


by. 조제 2008


[가족조각이불 2] 치킨의 맛은 어떠십니까? 이야기

  아빠는 갑자기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일을 안 하고 있었는데, 그에 반비례해서 술을 먹는 양은 점점 늘어갔다. 어릴 때부터 그랬지만 그때는 거의 매일매일 취해 있었고, 날이 가면 갈수록 그의 정신도 급격히 무너져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더해 작은 오빠의 발작은 더 심해져갔고 모든 게 '어떤 파국'을 향해 서서히 하지만 확실히 굴러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때 취업한지 얼마 안 되었는데 야근이 많아 힘들었고, 사람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사회생활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침에 출근할 생각을 하면 막막하고 겁이 나서 혼자 울다 잠들 때도 많았다. 하지만 그때 당시 우리집에서 돈을 버는 사람은 나뿐이 없었기에 아무리 무섭다고 해도 맘대로 그만둘 수는 없었다.
  
  아빠는 계속 술을 먹었고 취했고 주정을 부렸고 맑은 정신일 때가 별로 없었고, 엄마는 우울하며 신경질을 냈고 아빠와 싸웠으며 삶에 한탄했고, 결혼해서 나간 큰오빠는 현금서비스를 받아 빌려준 돈을 갚지 않았다. 작은 오빠는 광기에 몰려 우리를 공포에 떨게 했다. 잘 때는 부엌칼을 꼭 숨기고 문을 단단히 잠궜고, 혹시 밤에 자다 깨어 화장실이라도 갈라치면 잘못해서 작은오빠를 깨울까봐 발소리를 죽여 살금살금 걸어갔다. 그러다 너무 증세가 심해져 위험해지면 119를 불러 병원에 입원시켰다. 병원비는 아무리 싼 국립정신병원이라도 한달에 50만원도 넘게 나왔다. 그런 일의 반복이었다.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던 격리요양원은 더 비쌌고, 그곳에 대한 안 좋은 소문들은 우리를 망설이게 했다. 국가는 우리에게 물론 아무일도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항상 신경이 날카로웠고 조금만 건드려도 마구 울 듯한 기분이었다. 돈도 항상 모자랐다. 그리고 그때 그일이 있었다. 
  
  어느 주말, 아빠는 역시 술에 약간 취해 내게 치킨이 먹고 싶다고 졸랐다. 그때 당시 치킨 한마리는 7000원. 그정도 돈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때 난 앞에 말해다시피 사는 것에 너무 지쳐있었고 아무도 날 도와주지 않고 괴롭히기만 하는 것 같아 하루하루 사는 게 너무너무 힘들었다. 앞으로 납입기한이 몇년이나 남은 학자금대출을 꼬박꼬박 갚는 것도 힘들었고, 적금도 좀 들고 싶고, 책도 더 사고 싶고, 친구들이 간다는 해외여행도 한번쯤은 가보고 싶었고.
  
  - 무엇보다 그냥 쉬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특히 가족이 없는- 곳에 가서, 잠시라도 아무 걱정없이 악몽없는 잠을 실컷 자고 싶었다. 누군가, 그 누군가, 제발 날 좀 안아주고 사랑해주었으면 했다. 
  
  그런 내게 치킨을 사달라는 아빠의 술 취한 얼굴과 목소리는 너무나 끔찍했다. 그의 오래된 무능력함과 나약함이 너무 미웠다. 날 낳지 말지, 왜 결혼을 하고 아빠가 되었지? 그럴 능력도 안 되면서. 그러면서 내게 용돈을 바라거나-그래봤자 다 술 먹는데 쓸- 먹고 싶다고 치킨을 사달라고 하는 그 뻔뻔함이 진저리나도록 싫었다. 치킨 같은 거 비싸지도 않지만, 치킨 같은 거 까짓 사줄수도 있지만, 사주기 싫었다. 그래서 "주말이라 은행에서 돈 못찾아서 지금 돈 없어"라고 말하고 내방에 들어가버렸다.
  
  그뒤 얼마후 아빠는 추석 때 역시 술을 먹고 성묘를 갔다가 산에서 넘어져 갑자기 뇌출혈로 떠나버렸다. 마지막 기억조차 술을 먹은 그를 구박하는 나였다. 전화로 소식을 듣고 택시를 타고 가던 나는 무의식중에 "아빠 차라리 돌아가세요. 식물인간이나 반신불수되서 우리 고생시키지 말고 차라리 돌아가세요. 병원비가 얼마나 나오겠어요. 그럼 나 너무 힘들어요. 지금도 너무 힘든데..." 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해버렸다. 공교롭게도 아빠는 내 생각대로 혼수상태로 응급실에 실려와 그뒤로 눈한번 못 뜨고 숨을 거뒀다. 
  
  그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럴수밖에 없었고 아마 똑같은 상황이 되도 또 그럴 것이다. 
  안다. 나는 그때의 나를 이해한다. 그리고 그때도 이해했다. 
  스스로를 애도한다. 
  
  하지만 그뒤로 난 그때문에 오래도록 죄책감에 떨었고, 아빠가 날 원망하며 지옥에서 날 데리러 올거라는 근거없는 공포와 환상에 시달렸으며, 오래도록 악몽에 고통스러워하며 서서히 미쳐가야만 했다. 몇년간이나. 그뒤 몇년간 나는 닭을 먹지 못했다. 치킨집 간판만 봐도 구역질이 났다. 거식증세가 나타난 것도 그때쯤부터였다. 나는 사실 그전까진 치킨을 참 좋아했다. 
  
  그렇지만 시간은 흘러가고 죽지 않는 이상 사람은 조금씩 변한다. 몇년이 지난 어느 아빠의 기일에 치킨집을 지나던 난 고소한 치킨 냄새에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었다. 구역질은 나지 않았다. 나는 가게문을 열고 들어가 떨리는 목소리로 치킨을 주문해 뜨거운 프라이드 치킨 한마리를 샀다. 들고 오는데 치킨 냄새가 모락모락 피어올라 배가 고파졌다. 나는 아빠 사진밑에 치킨을 두고 엄마와 추도기도를 한다음, 비로서 그 치킨을 먹었다. 눈물과 함께 먹은 치킨은 맛있었다.

by. 조제 2010/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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